[강의소개] 가우디 15강

역동하는 형태와 복잡한 기하학, 기괴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 한없는 자유 속에서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가우디 건축을 우리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건축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는 그 시대와 장소에 있습니다. 건축은 새로운 재료나 기술의 등장, 도시나 사회의 변화상 뿐 아니라, 당대의 분위기나 입맛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우디가 받은 신고전주의 교육, 고전을 벗어나려 탐구하던 자연이라는 주제 역시 ‘지금, 여기’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가우디가 살았던 ’20세기초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건축을 탄생시킬만한 아주 독특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강의는 가우디 건축을 단순히 ‘어떤 천재성의 발현’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의 건축이 형성된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20세기초 근대 건축의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나아가 건축과 도시에 대한 이러한 입체적 시각이 오늘날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1강<안토니 가우디_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가우디는 건축에 자연의 성질을 반영하여 기존 형식을 벗어난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안했다. 덩어리들의 생기있는 움직임과 대담한 색채로 그의 작품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변화와 역동’에 대한 갈망은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던 카탈루냐 산업자본가들의 입맛에 맞았다. 가우디 건축의 바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2강<모데르니스마 카탈라_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
 
독일의 유겐트스틸, 비엔나의 세제션, 파리의 아르누보 그리고 카탈루냐의 모데르니스마. 유럽 곳곳에서 전통과 단절된 새 시대의 시작을 선언하는 양식들이 등장했다. 전쟁이 없던 평화의 시기, 증기기관이 등장으로 폭발적인 산업 부흥이 일어났다. 스페인의 대표 산업지역인 카탈루냐의 경제적 부흥은 ‘우리가 이 시대를 주도한다’는 자긍심을 고취시켰고, 곧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흥으로 이어졌다.
3강<가우디의 도시_로마 그리고 중세 바르셀로나>
 
기원전 15년 로마인이 이곳에 ‘콜로니아 파브리아 율리아 아우구스타 바르키노’를 설립했다. 약 1,500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 이후 바르셀로나는 고트족, 이슬람 세력,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으며 중세 도시로 성장했다. 14세기 즈음 도시의 영역이 확대되어 항구를 포함하는 새로운 성곽이 건설되었다.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 람블라스 길은 중세 성곽의 해자 자리. 이처럼 도시 옛 구조는 여전히 오늘날 도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4강<근대 도시계획의 실험장_에이샴플라, 수페리야>
 
바르셀로나는 근대 도시계획의 실험장이었다. 급격한 산업화는 도시화로 이어졌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살인적 밀도로 슬럼화, 전염병 같은 도시 문제가 뒤를 이었다. 신시가지인 에이샴플라 블록은 좁고 긴 합벽 주택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환기는 앞뒤로만 가능했는데, 뒤쪽으로 창을 낼 수 없는 모퉁이땅은 여러모로 활용이 어려웠다. 가우디의 밀라 주택은 모퉁이땅의 난제를 극복하려는 건축적 시도였다.
5강<부자들의 집을 짓는 건축가_밀라 주택 & 바트요 주택>
 
파세츠 다 그라시아는 중세 성벽의 북문인 ‘천사의 문’에서 그라시아 동네로 이어지는 폭 61미터 길이 1.6킬로미터에 이르는 큰 길이다. 19세기 말 이곳에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이 길이 곧 도시의 부와 번영을 뽐내는 모더니즘 건축의 전시장이 되었다. 특히 ‘만사나 데 라 디스코르디아’라 불리는 블록에는 가우디의 바트요 주택, 푸치 이 카다팔크의 아마티예르 주택, 두메넥 이 문타네의 예오 무레라 주택 등 당대 대표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다.
6강<가우디의 말과 글_가우디의 건축노트>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노트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글로 쓰곤 했다. 특히 ‘레우스의 수기’라고 불리는 젊은 날 노트에는 그의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담겨있다. 그의 건축적 관심사와 판단기준들을 따라가면 건축에서 장식의 역할과 그 가능성에 대한 가우디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7강<가우디의 후원자_어제의 양치기 오늘의 귀족>
 
구엘가는 대표적인 ‘인디아노’ 가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귀국한 인디아노들은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넘어 그들의 고향에 문화적·사회적 변화를 불러왔다. 열대 지방에서의 추억을 반영한 그들의 열대풍 대저택과 정원은 지역의 미적 풍토를 새롭게 했고, 대규모 공공사업 등 고향의 공동체를 지원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시기 인디아노들은 새 시대를 여는 상징적 존재였다.
8강<구엘 저택_돌건축에 움직임을 담다. 열린 평면>
 
에우세비 구엘은 전통적인 카탈루냐 귀족 저택의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혁신적인 모습의 저택을 갖고자 했다. 가우디는 중앙부 살롱의 네 모서리를 열어 공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를 넘어 공간의 유동성을 드러내는 근대 건축의 전조를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구엘 저택에는 공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여 내외부 의 유기적 흐름을 강조하는 ‘열린 평면’의 개념이 녹아있다.
9강<돌 건축에 부드러움을 담다_베예스구아르드의 껍질과 속살>
 
베예스구아르드 주택은 바르셀로나 북쪽 코르세롤라 산기슭, 마르티 1세의 옛 성채의 폐허 위에 지어졌다. 각이 툭툭 불거져서 단단한 중세 요새를 연상시키는 외부 껍질은 짙은 색 거친 돌로 지어졌고, 그 내부는 모서리가 모두 둥글게 깎여져서 마치 녹아내린 마쉬멜로우처럼 보이는 순백의 부드러운 속살로 채워져서 극적 대비를 이룬다. 이 주택은 마치 중세 성채 안에 현대적인 주거 공간을 채워넣은 듯한 건물이다.
10강<구엘과 가우디의 유토피아_구엘 공원 & 구엘 공장단지>
 
가우디는 구엘 공원에서 지형의 인위적 변형을 최소화하고, 자연 경사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고가도로를 건설했고, 그 겉에 현장에 있던 돌을 붙여 주변 환경에 쉽게 융화되도록 했다. 구엘은 구도심에서 노동자 봉기를 겪고 난 후 그들의 거주 환경 개선을 도모했고, 문화 및 종교 시설이 갖추어진 밝고 경쾌한 모더니즘 양식의 공장단지를 건설했다. 구엘은 노동자들이 경건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기독교 신앙에 바탕한 자급자족형 공동체를 구상했다. 이 단지들은 ‘모여사는 방식’에 대한 가우디와 구엘의 유토피아적 시각을 보여준다. 
11강<성가정 성당의 구조 혁신_기울어진 기둥의 진화>
 
기울어진 기둥은 구엘 공원과 베예스구아르드에서도 사용되었지만 구조체들이 외벽과 결합되어 하나의 건축물로 완성된 것은 구엘 공장단지 성당이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가우디는 복잡한 하중의 계산을 직관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줄 다중현수선 구조모형을 창안했다. 성가정 성당과 구엘 공장단지 성당의 구조는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공장단지 성당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우디는 성가정 성당에서 건설의 합리성을 담보해줄 기하학적 분석에 몰두한다.
12강<성가정 성당의 새로운 기하학_직선으로 만든 역동적인 입체>
 
구조체가 기울어지면서 형태가 복잡해지자 가우디는 이들을 정의할 새로운 기하학이 필요했고, 곧 룰드 서피스라는 기하학을 사용하여 전례 없는 독특한 형태들을 정의했다. 가우디는 성가정 성당 내 보육원 지붕에 코노이드를, 구엘 공장단지 내 성당의 출입구 천장에는 하이퍼볼릭 파라볼로이드를 사용했다. 장년이 된 가우디는 거의 모든 건축 부재를 룰드 서피스 기하학으로 정의했는데, 이를 통해 독특한 조형미와 합리적 건설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13강<성가정 성당의 성경적 해석_돌에 새긴 성경>
 
‘성가정을 기리는 속죄의 성전’. 가우디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이 성당의 건설을 지휘했고, 그의 사후에도 공사가 진행되어 현재 2026년 주요 구조부의 완공을 앞두고 있다. 성당 동쪽의 탄생 입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기를, 서쪽의 고난 입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표현하며, 성당의 주 출입구가 놓일 남쪽의 영광 입면은 기독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천국으로 가는 여정이 표현될 예정이다.
14강<라이벌 그리고 협력자_유이스 두메넥, 주셉 푸츠, 주셉 마리아 주죨>
 
가우디의 라이벌이었던 유이스 두메넥의 카탈루냐 음악당, 산 파우 병원, 예오 무레라 주택. 주셉 푸츠 이 카다팔크의 아마티예르 주택, 푼셰스 주택, 카사라모나 직물 공장을 통해 당시의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스무 살 가량 어리지만 가우디의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주셉 마리아 주죨의 몬페리 몬세랏성모성소, 십자가 주택, 플라넬스 주택을 보면 마치 또 다른 가우디의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5강<왜 다시 가우디인가?_가우디의 현대성>
 
‘100년전 카탈루냐 돌 건축을 우리가 왜 배워야해요?’ 예전에 한 특강에서 들은 질문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까지도 ‘장식적이고, 수공예적인, 여전히 귀족적인’ 가우디 건축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가우디 건축은 가치를 재평가받고, 대중과 전문가에게 다시금 사랑받고 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그의 작업은 현대 건축과 예술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늘날 왜 가우디 건축이 다시금 사랑받고, 또 어떻게 수용되고 소비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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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건축가, 아키트윈스 대표)

가우디의 모교인 카탈루냐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14년 <장식>, 2015년 <가우디 1928> 등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했고, 2018년 저서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밀라 주택>을 출간했다.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가우디전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다양한 자리에서 가우디와 스페인 건축에 관한 저술과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국립한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