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구엘과 가우디의 유토피아_구엘 공원 & 구엘 공장단지

구엘 공원. 주 출입구 쪽에서 바라본 계단 (사진: Canaan, ‘wikipedia´)

구엘 공원과 구엘 공장단지는 에우세비 구엘이 맡긴 이 두 프로젝트는 단지계획이 바탕이 된 프로젝트로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에 관한 가우디의 유토피아적 비전이 드러나는 작업이다. 도심을 벗어나 밀도가 낮은 지역에 위치한 두 단지에서 가우디는 스스로 생각해온 이상적인 공간을 조성한다. 내외부 공간을 조직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우디는 자연과 조화를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적 혁신에 이르기도 했다.


구엘 공원Park Güell, 1900–1914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 북쪽 코르세롤라 산맥Sierra de Collserola 한자락에 위치한 공원으로, 정원과 고가도로, 광장, 두채의 주택과 관리시설 등을 포함하고 있다. 공원의 총 면적은 17.18헥타르이며, 대지에는 약 60m의 높이 차이가 있다.

1899년, 에우세비 구엘은 주거 단지를 만들기 위해 카르멜 산Monte Carmelo의 남동쪽 경사면, 즉 해가 잘 들고 북풍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두 대지를 매입하여 1914년까지 건설되었으나 주택 부지가 잘 팔리지 않아, 1926년 공공 공원으로 재개장하게 되었다.

처음 주거 단지로 계획되었을 때부터 “Park Güell”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공원 그것도 “Park”라는 영단어가 붙은 것은 처음부터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영국식 정원도시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사는 1900년 11월 시작되어 1903년까지 도로 개설, 공원 주변의 울타리, 입구 파빌리온, 마차 대피소, 접근 계단, 도로 및 배수 체계가 완성되었다. 1904년에서 1906년 사이 견본 주택으로 사용될 현재 가우디 박물관이 지어졌고, 1905년에는 트리아스 주택이 완성되었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열주 공간, 1907년에서 1913년사이 그리스식 극장과 그곳의 물결 모양의 벤치가 완공되었다.

구엘 공원은 원래 약 60채의 고급 주택 단지로 계획되었다. 각 필지의 면적은 약 1200㎡이었지만 그중 240㎡만 건축을 하고 나머지는 정원으로 유지하기로 정해졌다. 필지의 가격은 23000~37000 페세타로, 당시 기준으로는 높은 가격이었는데,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의 에이샴플라 지역(특히 파세츠 다 그라시아 대로 주변)을 더 선호했다.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1902년 총파업 이후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같은 외곽 주거지역의 안전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1918년 에우세비 구엘의 사망 이후 상속인들은 공원을 바르셀로나 시에 500,000 페세타에 매각했고, 1926년 4월 26일 공식적으로 공공 공원으로 개장했다.

고가도로Viaducto는 공원 내 총 3km 길이로 설계되어 60m에 이르는 부지 내 높이 차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한다. 가우디는 인위적인 지형 변형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 경사에 맞추어 이동을 가능하도록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고가도로의 내부는 벽돌로 제작되고 외부는 자연석으로 덮여졌는데, 현지에서 채굴한 돌로 지어져서 주변 환경과 쉽게 하나로 융화되었다.

계단La Escalinata은 공원 내 주요 랜드마크로 이어진다. 첫 번째 분수는 자연적 형태를 모방한 구조물로, 작은 폭포와 식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분수는 원형 메달 모양으로, 카탈루냐의 문장과 의학을 상징하는 뱀이 새겨져 있다. 세 번째 분수는 물을 뿜어내는 도마뱀(드래곤) 구조물로, 화려한 트렌카디스로 장식되어 있으며 불의 요소를 상징하는 신화적 생물로 해석된다.

노천 광장Plaça de la Natura은 길이 86m, 너비 43m로 타원형 구조이며 총 면적은 2694㎡에 달한다. 이 광장은 공동체 모임과 문화 및 종교적 행사를 위한 그리스식 극장으로 설계되었으며, 너울거리는 야외의자로 둘러싸여 있다. 길이 약 110m에 이르는 이 야외의자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앉는 사람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표면은 트렌카디스(깨진 타일과 도자기를 활용한 기법) 방식으로 장식되어 다채로운 색상과 패턴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업에는 주셉 마리아 주졸Josep Maria Jujol이 참여했다. 이 광장의 아래에는 바닥의 빗물을 저장하고 재활용하는 지하 저수조가 매립되어 있다.


구엘 공장단지Colònia Güell, 1898-1914

구엘 공장단지의 모습. 공장단지이다 보니 대부분의 건물은 평범한 황토색 벽돌로 지어졌다. (사진: Enfo, ‘wikipedia’)

구엘 공장단지는 바르셀로나 근교 산타 콜로마 데 세르베요Santa Coloma de Cervelló에 위치한 공장단지다. 에우세비 구엘은 바르셀로나 노동자 봉기를 겪고 나서 노동자들의 거주 환경등 개선을 도모했다. 공장단지 안에 문화 및 종교 시설을 제공했고, 밝고 경쾌한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을 건설했다. 특히 단지 내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현재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짐)은 가우디의 대표작인 성가정 성당의 구조적 기초를 다진 실험작으로 평가받는다.

1890년, 에우세비 구엘은 바르셀로나의 산츠Sants 지역에 있던 방직 공장을 칸 솔레르 데 라 토레Can Soler de la Torre 농가 주택 주변으로 이전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서는 노동자와 산업자본가 사이에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총 파업이나 생산 장비의 파괴 등 산업적 피해도 발생하기 이르렀다. 이에 최신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방직 공장을 도시와 동떨어진 자립적인 도시 즉 식민지형Colònia 산업단지로 계획하게 된다. 

노동자 주택은 공장 근처에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배치되었다. 구엘 공장단지 일반 계획에는 공장 외에도 병원, 여관, 학교, 상점, 극장, 협동조합, 예배당, 그리고 노동자 주택들이 포함되었다.구엘은 단순한 산업 단지가 아닌 자급자족형 공동체를 구상했고, 이 시설들을 통해 노동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계획했다. 가우디는 단지의 전체 배치를 계획했고 프란세스크 베렝게르, 조안 루비오, 주셉 카날레타 등 가우디와 가까운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단지 내 교회는 가우디가 설계했지만, 1918년 에우세비 구엘의 사망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현재까지도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공장장 에스피날의 집, 건축가 조안 루비오, 1900년 (사진: Canaan, ‘wikipedia’)

구엘 공장단지는 가우디와 후대 건축들이 공을 들여 만든 카탈루냐 모더니즘 건축의 전시장이다. 마감없이 노출된 벽돌은 구조 뿐 아니라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되었고, 철, 세라믹 등 신소재를 도입되었다. 조안 루비오 등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고딕 요소 재해석한 부분도 눈에 띈다.

특히 부분적으로 완성된 단지 내 성당의 지하 경당은 성가정 성당으로 이어지는 장년 가우디의 구조 혁신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가우디는 이곳에서 성당의 구조 계산을 위한 다중 현수선 모형을 창안한다. 쇠사슬을 늘어트려 만든 현수선 모형을 통해 가우디는 건물의 구조와 공간의 모습을 가늠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최종 형태를 눈으로 확인해가며 설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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