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회화, 조각 등 다른 조형예술과는 달리 계획과 시공에 여러 사람이 개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내 손으로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들 때’에는 필요치 않았던 소통 과정이 필요하다. 기하학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형태는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될 방법이 없고, 그러면 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구조체가 기울어지고 형태가 지극히 복잡해지자 곧 이 건물의 형태를 정의할 새로운 기하학이 필요해졌다.
가우디는 룰드 서피스라는 독특한 기하학을 사용하여 전례 없는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밀라 주택에서 가우디는 옥상 위로 드러난 계단실의 역동적인 형태를 ‘회전하는 형틀을 이용하여 깎아낸 덩어리’를 통해 구현했다. 1912년 밀라 주택을 마무리한 가우디는 이후 15년간 성가정 성당 작업에만 집중했고, 이곳에서 가우디는 ‘변화와 활기’라는 동시대의 감각을 새 시대의 건설 기술로 만드는 데 매진했다.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노트에 ‘산업 대량생산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이제 손 기술이 좋은 시공업자를 만나기 어렵고, 수공 비용은 급격히 오르고 있다’고 적었는데, 아마도 이런 고민들이 그를 값비싸고 시간도 많이 드는 수공예를 덧하지 않은, 공장 생산되는 부재들로 이루어진 건축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타일을 깨서 표면을 마무리하는 가우디의 트랜카디스 방식 역시 역동적인 곡면을 개별적인 현장 제작 없이 기성 제품의 조합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룰드 서피스(Ruled Surface)는 직선을 이용해 생성되는 곡면으로, 일본에서는 '선이 직물처럼 직조되어 이루어진 면'이라는 의미에서 선직면(線織面)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룰드 서피스는 직선이 특정 규칙에 따라 움직여 형성된 것이기에 비교적 간단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건축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하이퍼볼릭 파라볼로이드, 코노이드, 헬리코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룰드 서피스 중 하나인 코노이드는 일반적으로 한쪽은 고정되어 있는 직선, 다른 쪽은 움직이는 곡선을 따라 그려지는 직선들로 생성되는 표면인데, 가우디는 성가정 성당 내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만든 보육원 지붕에 코노이드를 사용했다. 장축을 기준으로 건물의 중심에는 큰 보 역할을 하는 철골이 있고, 그 위에 작은 보 역할을 하는 목재가 시소처럼 좌우로 흔들리면서 만들어진 입체이다. 큰 하중을 감당하는 철골 보 덕에 구조체의 구성이 지극히 단순하다.
구엘 공장단지 내 성당의 출입구 천장(본당으로 올라가는 주 계단의 아랫부분)에는 하이퍼볼릭 파라볼로이드가 사용되었다. 가우디가 이곳에 이 형태를 사용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가 이 성당에 기울어진 기둥을 사용하면서 수직 수평이 맞지 않는 구조체들 사이에 바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식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이퍼볼릭 파라볼로이드 안에는 숨겨진 교차하는 두 개의 아치 덕에 이 천장이 아래로 볼록한 형태를 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로 볼록한 천장은 구조체에 힘을 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역동성을 강조하는 가우디 입장에서는 조형적으로 좋은 선택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60세를 넘기며 장년이 된 가우디는 거의 모든 건축 부재에 룰드 서피스를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가우디는 독특한 조형미와 합리적 건설방식을 구현했다. 가우디 건축의 현란한 겉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건축의 합리성이다. 가우디는 근대인으로서 구조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경제성을 포함한 건설기술의 혁신에 있어서도 남다른 성과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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