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가우디의 후원자_어제의 양치기 오늘의 귀족

에우세비 구엘 이 바시가루피 Eusebi Güell i Bacigalupi 1846-1918

에우세비 구엘은 바르셀로나 태생의 산업자본가이자 정치인으로 가우디의 제일 가는 후원자였다. 구엘 가문은 본래 귀족 집안이 아니었으나, 아버지 조안 구엘 이 페레르 Joan Güell i Ferrer 1800-1872와 장인 안토니오 로페스 이 로페스 Antonio López y López 1817-1883의 성공적인 사업 활동 덕에 막대한 부와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인디아노스Indianos

‘인디아노스’는 18-19세기에 스페인, 특히 카탈루냐 지역에서 아메리카 대륙 (주로 라틴아메리카)으로 이주해 성공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신대륙에서 상업, 농업 등 경제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이름은 당시 라틴아메리카를 “인디아스Indias“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을 넘어 고향에 문화적·사회적 변화를 불러왔다. 열대 지방에서의 거주경험을 반영한 열대풍 대저택과 정원을 건축하여 지역의 미적 풍토를 새롭게 했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고향 공동체를 지원하며 지역 사회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같은 활동으로 인디아노스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구엘 별장(La Torre Güell)은 이후 개조되어 현재는 페드랄베스 왕궁(Palacio Real)으로 쓰이고 있다. 정원에는 이국적인 나무들이 심져졌다.

에우세비 구엘은 인디아노스의 후손으로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고향 바르셀로나의 문화적·건축적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바르셀로나의 도시 경관과 문화적 정체성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 조안 구엘과 바포르 벨

에우세비 구엘의 아버지 조안 구엘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주한 뒤 사업 활동으로 큰 부를 축적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인디아노였다. 그는 1839년 철 주조 및 섬유 기계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라 바르셀로네사La Barcelonesa‘를 설립하였는데 이후 이 회사는 ‘라 마키니스타 테레스트레 이 마리티마La Maquinista Terrestre i Marítima‘로 통합되어 당시 산업 혁명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1840년 그는 바르셀로나 산츠 지역에 벨벳, 코듀로이, 면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인 ‘바포르 벨 Vapor Vell‘을 설립했다.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증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이 공장은 당시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공장 중 하나였다.

이후 조안 구엘은 1849년에 카탈루냐 산업 연구소를 설립하며 산업 혁신과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며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해 카탈루냐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장인 안토니오 로페스와 트란스아틀란티카

에우세비 구엘의 장인인 안토니오 로페스 이 로페스는 쿠바에서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또 다른 인디아노였다. 그는 1850년 ‘안토니오 로페스 증기 우편 회사 Compañía de Vapores Correos A. López‘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를 통해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주요 해운 네트워크를 형성한 그는 1881년 ‘스페인 대서양횡단 해운회사 Compañía Transatlántica Española‘로 사업을 키웠다. 트란스아틀란티카 회사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해운회사로, 상업적 교류 뿐 아니라 이민자들과 화물을 운송하며 스페인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안토니오 로페스는 해운업 외에도 ‘히스파노 콜로니얼 은행 Banco Hispano Colonial‘과 ‘상업 신용 은행 Banco de Crédito Mercantil‘을 설립하며 금융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안토니오 로페스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스페인 정부로부터 코미야스 후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딸 이사벨 로페스 이 브루 Isabel López i Bru가 에우세비 구엘과 결혼하며 이루어진 두 인디아노 가문의 결합은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더욱 강화했다.

(사진: 에우세비 구엘과 이사벨 로페스 부부, 1871)
에우세비 구엘과 안토니 가우디

에우세비 구엘은 아버지와 장인의 사업적 기반 위에 섬유 산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후 백작으로 임명되며 구엘 가문 최초로 귀족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에우세비 구엘의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건축가 가우디를 후원하여 바르셀로나를 세계적인 건축 도시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것이다.

에우세비 구엘은 구엘 저택Palau Güell을 비롯하여 구엘 공원 Park Güell, 구엘 공장단지 Colònia Güell와 같은 가우디의 가장 독창적인 건축물이 완성되는데 이바지했다. 구엘 저택은 에우세비 본인의 저택으로 초기 가우디 건축작업을 대표하는 혁신적인 건물이며, 구엘 공원은 구엘의 이상주의적 비전과 가우디의 독창적 건축 양식이 결합된 주택 단지로 개발되었다가 지금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공원이 되었으며, 구엘 공장단지는 바르셀로나 근교의 산업 단지로서 노동자들을 위한 이상적인 생활 공간을 조성하는 근대적인 단지 계획이다.

가우디가 그린 구엘 가문의 문장, ‘어제의 양치기 오늘의 귀족’이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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