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부자들의 집을 짓는 건축가_밀라 주택 & 바트요 주택

‘부자들의 집을 짓는 건축가’

가우디의 별명이다. 실제로 가우디는 산업자본가들의 집을 여럿 지었고 그중에서 밀라 주택과 바트요 주택은 자신 만의 양식에 이른 50대 원숙한 건축가 가우디의 대표작이다.1 두 집은 여러모로 비슷한 조건에서 시작하였지만 다른 결과로 완성되었다. 의뢰인의 성향, 지어진 지역과 시기가 비슷하지만 바트요 주택은 전면이 총 천연색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반면 밀라 주택의 외관은 크림색 돌의 너울거림만 있을 뿐 색도 없고 반짝이는 타일도 없어서, 사실 겉모습만으로는 이두 건물이 과연 같은 건축가의 작업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두 건물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자신만의 건축적 과제를 드러냈고, 가우디가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같이 독특한 결과로 완성된 것이다.

파세츠 다 그라시아2

두 집 모두는 파세츠 다 그라시아에 있다. 파세츠 다 그라시아는 중세 성벽의 북문인 ‘천사의 문Portal de l’Àngel3 에서 그라시아 지구 방향으로 이어지는 폭 61미터 길이 1.6킬로미터에 이르는 큰 길로 ‘그라시아 대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성벽이 허물어지기 전부터 도시의 가장 중요한 여가 장소였고, 지금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 문화, 쇼핑의 중심지다.

바르셀로나(1711) / Le Plan De Barcelonne et de ses Environs Tres Exactement Leves sur les Lieux en 1711

1827년 5월 24일, 파세츠 다 그라시아가 생기기 전 이곳에는 바르셀로나와 그라시아 마을을 연결하는 오래된 시골길이 있었다. 성곽 북쪽에는 1427년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설립한 산타 마리아 다 제수스Santa María de Jesús 수도원이 있었는데, 성의 북문을 나와 이 앞을 지나는 길은 수도원의 이름을 따라 ‘카미 데 제수스Camí de Jesús‘로 불리게 되었다. 수도원은 성 밖에 있던 탓에 수차례 전쟁 피해를 입어 결국 사라지게 되었지만, 신선한 물이 솟아오르던 수도원 마당의 ‘제수스 샘Font de Jesús‘은 남아 이 지역의 거점이 된다. 1830년경, 이 주변에 간식과 커피를 파는 가게들이 세워지며 이 부근은 바르셀로나 최초의 열린 여가장소로 자리 잡았다. 하신트 베르다게르의 시에 나오는 ‘예수의 샘물’이 바로 ‘폰 다 제수스’다.

바르셀로나 평야에는
그보다 더 좋은 물이 없었네:
가장 달콤한 물은
땅 위에서 솟아났네;
선한 이들은 그 물을 마시러 왔고,
성인들은 그 물을 마시러 왔네,
예수의 샘물은
물 중의 꽃이었네.4
1853년부터 1875까지 파세츠 다 그라시아 길에 있었던 샹젤리제 공원(Jardín de los Campos Elíseos).
파세츠 다 그라시아 사진 엽서

바르셀로나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도시가 개조 확장되면서 파세츠 다 그라시아는 물리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말 이곳에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대로는 지극히 화려한 건축물들로 채워졌고, 곧 바르셀로나의 부와 번영을 뽐내는 모더니즘 건축의 전시장이 되었다. 특히 만사나 데 라 디스코르디아Manzana de la Discordia5라 불리는 블록에는 가우디의 바트요 주택을 포함해 푸치 이 카다팔크의 아마티예르 주택, 안릭 사그니에의 무예라스 주택, 두메넥 이 문타네의 예오 무레라 주택 등 당대 이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이 한데 모여 있다. 오늘날 그라시아 길은 고급 부티크, 명품 브랜드, 레스토랑, 카페로 가득 찬 쇼핑 거리로도 유명하며, 역사적 건축물과 현대적 편의시설이 조화를 이루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부조화의 블록, 합성사진: ChristianSchd, Xavier Badia Castellà, Amadalvarez, Balou46  (wikipedia)
  1. 가우디가 지은 주택들 중 2개가 파세츠 다 그라시아 길에 있다. 에이샴플라 신시가지에 지어진 집은 3개다. 가우디의 주택들은 다음과 같다. 비센스 주택 Casa Vicens, 1883-1885, 엘 카프리쵸 El Capricho, 1883-1885, 보티네스 주택 Casa de los Botines, 1891-1892, 칼벳 주택 Casa Calvet, 1898-1900, 베예스구아르드 Casa Figueras, 1900-1909, 바트요 주택 Casa Batlló, 1904-1906, 카티야라스 샬렛 Chalet de Catllaràs, 1905, 밀라 주택 La Pedrera, 1906-1912  ↩︎
  2. 카탈루냐에서 일반적인 폭의 도로는 카레르Carrer, 넓고 쾌적한 산책로나 대로는 파세츠Passeig, 넓은 대로는 아빙구다Avinguda로 구분된다. 중앙을 동서방향으로 횡단하는 그란 비아, 남북 방향의 파세츠 다 그라시아, 대각선 방향의 아빙구다 디아고날은 바르셀로나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중요한 길이다. ↩︎
  3. 바르셀로나 중세 성벽에 있던 문으로 성벽 철거와 함께 사라졌다. 현재 카탈루냐 광장 남쪽으로 그 위치에 이 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
  4. ‘폰 다 제수스’는 모센 신토 베르다게르 Mossèn Cinto Verdaguer의 시를 통해 오랫동안 읖어졌다. 그의 시 중 두번째 단락:
    “hi havia aygua tan bona / en lo pla de Barcelona: la mes dolça era pel llavi / de la terra ben dessús; los bons lo canti hi omplian, /  los sants a beure hi venian, que era la flor de les aygues / la de la Font de Jesús.” ↩︎
  5. 이는 ‘부조화의 블록’을 뜻한다. 모든 건물이 자기 좀 봐달라고 자신을 뽑내는 건물들이 들어서다보니 조화롭지 못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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