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이전 타라고나 지역의 예술가들_조각가 유이스 보니파스

라풀스는 1928년에 출간한 최초의 가우디 전기에서 그를 타라고나 출신으로 소개하며, 이 지역의 걸출한 예술가 두 명을 언급한다. 그들은 건축가 페라 블라이와 조각가 유이스 보니파스다.1

  • 유이스 보니파스 이 마소(Lluís Bonifaç i Massó, 1730-1786)

유이스 보니파스 이 마소(Lluís Bonifaç i Massó, 1730-1786)는 카탈루냐 발스 태생의 바로크 조각가다. 르네상스 조각은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비례와 시메트리를 중시하며, 이상적인 신체를 차분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반면, 바로크 조각은 움직임과 역동성을 기반으로 찰나의 동작과 긴장감을 강조하는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바로크 조각은 강렬한 표정과 동작, 구도를 통해 관람자의 감정을 자극하며, 작품이 관람자를 둘러싸며 ‘공간적’으로 확장된 느낌을 준다.

아니, 조각과 건축이 공간적이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럴 수 있다. 사실 고전의 아름다움의 바탕인 비례와 시메트리를 따지려면 사물은 평면 상에 놓여야 한다. 사물이 평면이 아닌 깊이 방향으로 놓이면 같은 덩어리도 앞에 것이 크고 뒤에 것은 작게 보일 뿐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사물의 상대적인 위치가 계속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적인 크기와 위치가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비례와 시메트리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들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특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Sacrificio de Isaac / Caravaggio (1598)

배경이 온통 까맣게 칠해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인물들이 어떤 공간 안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공간의 윤곽이 모두 소거된 이 그림에는 투시도법의 안내선이 없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등장한 세 명의 인물에 의해 공간 관계가 정의된다.

구약성경의 유명한 이야기인 ‘이삭의 번제’를 그린 이 작품은, 아들을 죽여 제사를 지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귀한 아들도 아끼지 않고 드리려 하자 천사가 급히 나타나 아브라함을 말리는 긴박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칼을 든 손은 이삭의 다리보다 더 앞으로 보이며, 더 뒤에 있는 천사의 손은 가장 돌출되어 보인다. 이로 인해 회화 속 공간은 앞뒤가 뒤얽힌다.

이들의 하반신은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쑥’ 등장한 인물들은 바닥에 고정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 유이스 보니파스가 만든 성모 마리아의 침대

성모 승천 대축일(La festa de l’Assumpció de la Verge)은 가톨릭에서 성모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간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이 기간 동안 성모의 고통(Transitus)이나 잠(Dormición)을 표현한 누운 모습의 성모 조각을 설치하고,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이 “성모 마리아의 침대”를 옮기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3

유이스 보니파스 / 성모의 침대 / 지로나 대성당 / https://catedraldegirona.cat/obres/llit-de-la-mare-de-deu/

유이스 보니파스가 만든 바로크식 성모 마리아의 침대는 구성이 독특하다. 침대의 장식판과 좌우에 위치한 두 기둥으로 이루어진 전경은 금박으로 덮여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주요 요소들의 존재감이 강렬하며, 사이 공간은 어둡게 감춰져 있다. 장식판은 두 기둥보다 더 돌출되어 있는데, 만약 실제 침대와 같은 구조였다면 이 각도에서 성모의 누운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는 위로 들려 있어 앞에서 잘 보이도록 기울어져 있다.

성모의 모습에는 이미 자체적인 원근 투시도법이 적용되어, 앞쪽 침대 장식판에 비해 크기가 무척 작아 보이며 그 깊이는 아득하게 느껴진다. 앞판과 뒤판을 연결하며 그려진 침대는 길게 확장된 투시도를 보여준다. 그런데도 가장 멀리 있는 침대의 머리쪽 장식판은 화려하게 꾸며져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오히려 눈앞으로 강렬히 다가오는 듯하다.

이병기는 가우디의 모교인 카탈루냐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장식>, <가우디 1928> 등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했고, 저서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밀라 주택>을 출간했다.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가우디전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 <가우디 1928>, 30쪽 ↩︎
  2. “이러한 전통은 대단히 인기가 있었지만 전쟁과 파괴로 인해 현재 카탈루냐 지역에는 지로나 대성당(1773년, 루이스 보니파스의 작품)과 산타 마리아 델 피 교회(1801년, 조셉 피카뇰의 작품)에 있는 두 개의 침대만이 남아 있다.” 성모의 침대에 관한 알베르트 코르테스의 글을 참고: https://basilicadelpi.cat/ca/llit-de-la-mare-de-deu-dag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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