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이전 타라고나 지역의 예술가들_건축가 페라 블라이

표지: Palau de la Generalitat / 건축가: Pere Blai / 사진: Jan Harenburg (Viquipèdia)

라풀스는 그가 1928년 출간한 최초의 가우디 전기에서 가우디를 타라고나 출신으로 소개하면서 이 지역의 걸출한 예술가 두명을 소개한다. 그들은 건축가 페라 블라이와 조각가 유이스 보니파스다.1

Palau de la Generalitat / 건축가: Pere Blai / 사진: Jan Harenburg (Viquipèdia)
  • 페라 블라이(Pere Blai, 1553-1620)

그는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가다. 초기에는 가우디의 고향인 타라고나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현재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Palau de la Generalitat) 개조 작업에서 입면을 설계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더 많은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 카탈루냐 지역의 주된 흐름이었던 고딕 양식에, 시대의 유행에 따른 세련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했다. 어떤 양식이든 하나의 흐름이 되면 관성이 생기고, 익숙한 입맛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고딕과 르네상스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식으로, 시기적으로 앞뒤에 있긴 하지만 고딕이 르네상스로 발전했다기보다는 지역적인 바탕을 가진 하나의 문화 흐름이 다른 것을 전복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고딕은 그 태생이 ‘북유럽 양식’이고,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로 돌아가자는 뜻을 품었으니 이른바 ‘남유럽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조형성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고딕은 수직성, 르네상스는 수평성이 모양을 주도한다. 그 의미는 분명하다. 고딕의 수직성은 인간의 의지로 중력을 거슬러 무언가를 세우는 것으로, 힘의 흐름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구조적 진실성을 드러낸다. 플라잉 버트리스 등 고딕 구조체의 방향은 덩어리 안에 흐르는 힘의 방향을 눈에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르네상스의 수평성은 전혀 위태롭지 않은 상태, 즉 변치 않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될 것 같은 시각적 안정감을 준다. 층간의 구분이 명확해야 시루떡처럼 쌓인 수평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이같은 양식에서 우리의 시선을 이끄는 것은 엔타블러쳐라는 수평선으로, 기둥위에 놓인 것이니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보’의 형상이다. 벽에 부착된 기둥은 이미 구조체로서의 의미를 잃었지만 ‘하나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엔타블러쳐와 짝을 이룬 기둥들을 ‘오더’라고 한다. 규범적인 오더와 엔타블러쳐 조합에서 중요한 것은 비례다.

입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은 내부 공간의 높이와 다르다. 조각상이 놓인 층의 바닥은 수평선과 같은 높이에 있지만, 그 위층의 수평선은 창문 높이, 즉 사람 허리 높이쯤에 위치하고 있다. 지상층의 경우는 러스티케이션(거친 돌) 처리로 2층 높이를 마치 한 층처럼 보이게 했다. 창문으로 보면 5층인데 얼핏 3개 층처럼 보인다. 첫 사진을 보면 가운데 2개 층은 자이언트 오더(두 층을 가로지르는 큰 기둥)로 하나로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 위를 보면 작은 창문 사이의 벽들은 눈에 띄게 밝은 색으로 처리되어 아랫층과 완전히 분리된 느낌을 준다. 너무 얇아서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층처럼 보이는데, 난쟁이 집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다. 내부 공간의 쓰임새나 치수 보다는 외부에서 보이는 비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조정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 건축은 다소 위선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16세기에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는 아니었겠지만) 이 건물은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이고, 위엄 있는 외관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목표였겠는가? 어쨌든 르네상스 건축은 안정적이고, 위엄있고, 우아하다. 이는 당시 국가 조직과 지도 체제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병기는 가우디의 모교인 카탈루냐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장식>, <가우디 1928> 등 가우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책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했고, 저서 <가우디의 마지막 주택 밀라 주택>을 출간했다.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가우디 특별전 기획위원,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가우디전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 <가우디 1928>, 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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