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소개
역동하는 형태와 복잡한 기하학, 기괴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 한없는 자유 속에서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가우디 건축을 우리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건축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는 그 시대와 장소에 있습니다. 건축은 새로운 재료나 기술의 등장, 도시나 사회의 변화상 뿐 아니라, 당대의 분위기나 입맛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우디가 받은 신고전주의 교육, 고전을 벗어나려 탐구하던 자연이라는 주제 역시 ‘지금, 여기’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가우디가 살았던 ’20세기초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건축을 탄생시킬만한 아주 독특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강의는 가우디 건축을 단순히 ‘어떤 천재성의 발현’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의 건축이 형성된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20세기초 근대 건축의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나아가 건축과 도시에 대한 이러한 입체적 시각이 오늘날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6월 16일(화): 1강. 가우디_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6월 23일(화): 2강. 구엘 저택_어제의 양치기, 오늘의 귀족
7월 02일(목): 3강. 밀라 주택_새로운 도시, 새로운 건축
7월 02일(목): 3강. 밀라 주택_새로운 도시, 새로운 건축
회차별 강의소개
1강. 가우디_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2026년 6월 사망 100주기를 맞이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20세기 초 근대 건축의 한 부분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비센스 주택, 구엘 저택, 구엘 공원, 구엘 공장단지 지하경당,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 성가정 성당 등 무려 7개의 작품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색채와 운동감을 갖고 있다’고 한 그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형태와 색채, 역동성을 건축에 도입하여, 고전으로 복고하려는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양식을 창조했다. 너울치는 입면, 새로운 리듬을 형성하는 부재들의 유기적 조합, 대담한 색채가 뿜어내는 활기는 산업혁명 이후 급성장한 카탈루냐 지역의 진취적인 기상을 조형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당시 카탈루냐는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모데르니스마 카탈라(카탈루냐 모더니즘)’라는 지역 문화운동이 탄생했고, 가우디 역시 이 흐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다. 이 같은 지역적 토양은 가우디뿐만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조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새로운 양식을 개척한 예술가들이 활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강. 구엘 저택_어제의 양치기, 오늘의 귀족
구엘 저택, 구엘 공원 등으로 익숙한 에우세비 구엘은 바르셀로나 출신의 산업 자본가이자 정치인으로, 가우디의 든든한 최고 후원자였다. 본래 귀족 출신은 아니었으나, 그의 아버지 조안 구엘과 장인 안토니오 로페스는 18~19세기 스페인에서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주해 부를 축적한 뒤 귀향한 이른바 ‘인디아노’였다.
인디아노들은 막대한 자본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후원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키웠다. 동시에 이국에서의 성공을 추억하며 본국에 새로운 미적 풍토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에우세비 구엘은 사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로 구엘 가문 최초의 백작 작위를 받았다. 그는 구엘 저택, 구엘 공원, 구엘 공장단지 등 10여 개의 프로젝트를 가우디에게 의뢰했다. 특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우디에게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그의 독창적인 건축 세계가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회 목적으로 설계된 구엘 저택은 가우디의 혁신성을 잘 보여주는 초기 대표작이다.
3강. 밀라 주택_새로운 도시, 새로운 건축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는 근대 도시계획의 거대한 실험실이었고, 1878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가우디는 이같은 대규모 도시 개발의 중심에 있었다. 19세기 중반 시작된 산업화로 인구가 급증했음에도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중세 성벽에 갇혀 있었다. 지속적인 도시 확장 요구가 묵살되었던 이유는 18세기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당시 카탈루냐가 중앙정부에 맞선 전력으로 억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가우디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마침내 도시 확장이 이루어졌고, 그는 신시가지에 칼벳 주택,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을 설계했다.
당시 신시가지 에이샴플라의 블록은 옆 건물과 벽을 맞댄 좁고 긴 형태로 구획되었다. 이로 인해 환기는 건물의 앞뒤로만 가능했고, 중앙부는 최소한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 중정(숨구멍)을 두어야만 했다. 특히 블록의 모서리는 뒤쪽으로 창을 낼 수 없어 주거 공간으로 쓰기 까다로웠다. 가우디는 모퉁이 대지에 지어진 밀라 주택에 부분적으로 철골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 냈다.
4강. 성가정 성당_새로운 구조, 새로운 기하학
장년기의 가우디는 기울어진 기둥을 활용한 구조적 혁신에 몰두하며 끊임없는 실험을 이어갔다. 구엘 공원과 베예스구아르드의 야외 공간에 처음 도입된 이 기울어진 기둥은, 이후 발전을 거쳐 구엘 공장단지 지하경당에서 최초로 건축물의 주 구조체로 사용되었다.
이 성당은 비록 지하 경당만 완성되었으나, 가우디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울어진 구조체의 복잡한 계산을 돕는 ‘다중 현수선 구조 모형’을 고안해 냈다. 기울어진 기둥 구조를 3차원 입체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하학이 요구되었다. 지하 경당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룰드 서피스’라는 새로운 기하학에 관한 실험은 그의 역작인 성가정 성당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다.